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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플] 검찰의 출석요구서를 받게 된 어느 날, K가 알았어야 했던 것들

요제프 K는 자신의 서른 번째 생일 아침, 늘 묵던 하숙집의 침대에서 깨어난다. 평소처럼 아침을 가져와야 할 하녀 대신, 검은 양복을 입은 두 명의 사내가 방으로 들어온다. 그들은 K가 체포되었다고 통지한다. 무슨 죄로 체포되는 것인지, 그들에게 어떤 권한이 있는지, K의 어떠한 질문에도 그들은 답하지 않는다.

2026. 05. 05. · 8분 읽기 · 양지훈

출석요구서 이미지

요제프 K는 자신의 서른 번째 생일 아침, 늘 묵던 하숙집의 침대에서 깨어난다. 평소처럼 아침을 가져와야 할 하녀 대신, 검은 양복을 입은 두 명의 사내가 방으로 들어온다. 그들은 K가 체포되었다고 통지한다. 무슨 죄로 체포되는 것인지, 그들에게 어떤 권한이 있는지, K의 어떠한 질문에도 그들은 답하지 않는다. 자신을 변호하기 위해 K는 이후 1년 동안 어디에 있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은 법원 주변을 헤매고, 변호사를 선임하고, 화가와 신부를 만나며 점점 자신의 사건에서 멀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에, K는 자신이 결국 죄를 지은 자였는지 아닌지조차 알지 못한 채 채석장 같은 곳에서 두 명의 사내에 의해 처형된다.

프란츠 카프카가 1914~15년 사이에 쓰고 사후인 1925년 발표된 미완 장편소설 〈소송〉의 시작과 끝이다.

카프카의 직업과 K의 비극

카프카는 보험회사의 법률 담당자였다. 프라하 대학에서 법학 박사를 받고 노동자상해보험공사에서 14년을 근무하며 산업재해 사건을 다뤘다. 노동자가 회사·국가·법원이라는 거대한 절차 앞에서 어떻게 무력해지는지를 매일 관찰했던 사람이 쓴 소설이라는 점은, 〈소송〉을 읽을 때 종종 잊혀진다. 이 작품을 그저 추상적인 부조리의 우화로만 읽고 마는 독자가 많은 것이다. 〈소송〉은 우화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절차에 빨려 들어간 한 시민의 구체적인 경험에 대한 보고서이기도 하다.

내가 이 작품을 다시 꺼내든 것은, 형사 변호인 자격으로 검찰 조사에 동행할 때마다 K의 첫 장면이 떠올라서다. 영장이 아닌 한 장의 출석요구서(시민들은 흔히 '소환장'이라고 부르지만 정확한 명칭은 '피의자 출석요구서'다)를 받아들고 변호사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시민의 표정에는, K의 그것이 있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알지만 그것이 어느 죄목의 어느 조항에 어떻게 해당하는지는 알지 못하고, 앞으로 며칠 또는 몇 달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갈지 짐작하지 못하는 자의 표정.

K가 한국에서 깨어났다면

만약 K가 1910년대 프라하가 아니라 2020년대 한국에서 그 아침을 맞이했다면, 그가 알았어야 할 것들은 의외로 명료하게 법전에 적혀 있다. 1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인류가 K들의 비극을 통해 어렵사리 정리해놓은 권리들이다.

먼저, 헌법 제27조 제4항. "형사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 이른바 무죄추정(無罪推定)의 원칙이다. 이는 단순한 도덕적 선언이 아니라 수사기관이 시민을 다룰 때의 태도와, 그 시민이 자신을 변호할 때 누려야 할 지위에 관한 헌법적 규범이다. 헌법재판소는 이 원칙이 형사피고인뿐 아니라 피의자 단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해왔다. 죄가 확정될 때까지 K는 죄인이 아니라 시민이다.

다음, 헌법 제12조 제2항.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형사상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 이를 구체화한 것이 형사소송법 제244조의3(진술거부권 등의 고지)이다.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를 신문하기 전에 ▲일체의 진술을 하지 아니하거나 개개의 질문에 대하여 진술을 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것 ▲진술을 하지 아니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아니한다는 것 ▲진술을 거부할 권리를 포기하고 행한 진술은 법정에서 유죄의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 ▲신문을 받을 때에는 변호인을 참여하게 하는 등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같은 조 제1항). 이 고지를 누락한 채 받은 진술은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대법원 판례).

마지막으로, 헌법 제12조 제4항.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헌법재판소는 이 규정이 단지 체포·구속된 자뿐 아니라 임의로 출석한 피의자에게도 적용된다고 봐왔다. 즉, 출석요구서를 받고 자기 발로 검찰청에 들어간 시민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헌법상 권리를 갖는다.

이상의 권리는 카프카 시대의 K가 알지 못했던 것이고, K의 비극은 K 개인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러한 권리 자체가 아직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시대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100년 가까이 지난 우리에게는 K가 갖지 못했던 도구들이 있다. 적어도 법전 안에는.

그러나, 조사실의 풍경

법전 안에 있다는 말과 조사실 안에서 작동한다는 말은 다른 차원의 진술이다. 임의 동행과 임의 출석이라는 형식으로 진행되는 수사에서, 시민은 '임의'라는 단어가 풍기는 자율성에 비해 훨씬 비대칭적인 권력 앞에 서 있다. 출석요구서의 문구는 부드럽지만, 그 부드러움 뒤에는 응하지 않을 경우 체포영장이 청구될 수 있다는 사실이 깔려 있다.

진술거부권은 행사할 수 있지만, 거부한 항목 옆에 작은 동그라미가 그려지고 그것이 어떤 식으로든 사건의 흐름에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을 시민은 직감한다. 법원이 진술거부 자체를 양형의 가중 사유로 삼는 것은 위법이라는 판례가 있음에도, 검사와 판사의 마음속 무게추가 어디로 기울지를 시민이 신뢰하기는 쉽지 않다.

변호인 조력권 역시 마찬가지다. 권리는 보장되어 있지만, 변호사를 선임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지, 국선변호인의 조력이 충분한지, 변호사가 조사실에 입회한다고 해서 신문의 강도가 실제로 약화되는지는 별개의 영역에 있다. 내가 입회한 어떤 조사에서 검사는 변호인의 의견 진술 요청을 다섯 번 가량 거절했고, 마지막 순간에야 마지못해 한 줄의 의견을 듣고는 곧장 다시 피의자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그 절차는 위법은 아니었지만, 권리가 행사되는 풍경의 한 단면이긴 했다.

K가 한국에서 깨어났다면, 그는 권리의 목록을 받아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목록이 실제로 그를 보호할 것인지는, 그가 어떤 변호사를 만나는지, 그가 자신의 사건 앞에서 얼마나 침착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가 속한 사회가 무죄추정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달라졌을 것이다.

카프카적이라는 것

'카프카적(Kafkaesque)'이라는 형용사가 일상어가 된 것은 카프카가 어떤 보편적인 무엇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시민이 거대 절차 앞에서 느끼는 무력감, 자신의 사건이 자신의 손에서 빠져나가는 감각, 그 절차 안에서 쓰이는 언어가 자신의 언어와 다르다는 발견. 이것은 100년 전 프라하의 K만의 경험이 아니라, 영장실질심사를 기다리며 법원 복도에 서 있는 오늘날의 시민에게도 그대로 작동한다.

법은 K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법이 K를 보호하기 위해 작동하려면 K가 자신의 권리를 알고 있어야 하고, 그 권리를 행사할 도구를 갖고 있어야 하며, 그 행사가 사회적으로 비난받지 않아야 한다. 한국 사회는 이 세 조건 중 어디까지 와 있는가. 무죄추정은 언론 보도 제목과 댓글의 풍경 속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다뤄지는가(우리는 기소 단계에서 이미 사람의 인생을 정리해버리는 데 익숙하지 않은가). 진술거부권을 행사한 자에 대해 우리는 즉시 "켕기는 게 있다"고 말하지 않는가. 변호사를 선임한 자를 우리는 "비싼 변호사를 산 부유층"으로 부르지 않는가. 권리의 행사는 매번 사회적 평판이라는 비용을 동반하고, 그 비용이 충분히 큰 사회에서는 권리란 결국 자산을 가진 자의 전유물이 된다.

K의 비극은 그가 죄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자신의 사건의 주체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있는 권리의 목록은, K가 자신의 사건의 주체로 남기 위한 도구다. 그 도구가 책 속에 머물지 않고 조사실로 걸어 들어오게 하는 일은, 변호사 한 사람의 입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권리가 권리로서 작동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은, 어떤 의미에서 K들의 연대로만 가능하다.

카프카는 친구 막스 브로트에게 자신의 원고를 모두 불태워 달라고 유언했다고 한다. 브로트는 이를 어겼고, 우리는 K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K가 자신의 운명을 알지 못했다는 것까지도 알고 있다. 그렇다면 K가 우리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단순한 데서 시작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정확히 아는 것. 그것이 K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가장 비싼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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